[영원훈원영] 데네브 - 01

iamond 2017. 1. 21. 11:41


BGM :: 君の知らない物語 (piano)








1.


"지훈이형! 원우형 어딨어요?"

"걔 몸 안 좋다고 권순영이 숙소 데려다줬어."

"언제요? 아 카톡 넣어야겠다 내일까진 맞춰봐야 되는데."


어차피 카톡할거 뭐하러 물어보냐 바빠 죽겠는데. 하여튼 이석민.

서둘러 폰을 꺼내는 석민의 등을 소리없이 째리며, 모니터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시간 여유가 부족한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세븐틴쇼 공연이 코앞으로 닥친 마당에 곡을 세 번이나 뒤엎어서 여태 편곡을 완벽히 끝내지 못 했고, 멤버들의 공연력도 영 못 따라가는 수준이라 지훈은 벌써 사흘째 한숨도 자지 못 했다.


비록 아직 데뷔날도 못 받아놓은 연습생 신분이지만 관객들 앞에서 형편없는 공연을 선보이는 건 자존심이 절대 허락치 않는다. 초조한 마음에 최근 멤버들에게 부쩍 짜증이 잦아지고 언성이 높아진 제 모습이 꼴불견이라는 건 스스로도 잘 알고 있지만, 기다려주는 팬들을 실망시키느니 멤버들에게 원망 한번 받고 마는 게 백 배는 더 낫다는 생각에 까슬한 눈꺼풀을 까뒤집으며 악착같이 버티는 중인 지훈이었다.


클릭, 작업해 놓은 샘플링을 재생하며 스크린 하단 메뉴바를 슬쩍 눈으로 훑었다. 오후 5시 5십 5분. 5가 세개. 지금쯤이면 아무리 전원우가 걸음이 늦어도 숙소에 들어가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안 그래도 몸도 안 좋은 애가 점심 먹은 게 얹힌 것 같다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원우를 기어코 숙소까지 데려다 주겠다던 권순영이 벌써 세 시간 째 안 돌아오고 있다.


토독, 토독.

마우스 위의 검지를 잠시 꿈틀대던 지훈이 결국 책상에 올려뒀던 폰을 집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많이 참아준 거다. 짧은 한숨을 내쉬며, 지훈은 망설임 없이 전화를 걸었다. 대상은 물론, 정해져 있다.


- ....어 지훈아. -

"원우야. 몸은 좀 어때."

- 괜찮아.. -


괜찮긴 뭐가. 목이 다 상했는데. 하여튼 전원우.

평소보다도 낮게 가라앉아 끝이 쩍쩍 갈라지는 음성을 들으며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꾹 씹던 지훈은 가늘어진 눈으로 샘플링 음파를 쫓다 플레이바를 세웠다. 아 이부분. 거슬리네. 체크. 드래그 클릭을 하며 다시 물었다.


"약은 먹었어?"

- 어... -


자신없는 대답. 일순 꿈틀한 눈매가 한층 가늘어지며, 음성이 상기되었다.


"안 먹었지."

- 아니야 먹었다니까.. -

"권순영이랑 뭐 했어 여태 약도 안 먹고?"


여지없이 뾰족해지는 제 말끝이 짜증스러워 지훈은 그만 마우스를 놓았다. 한 손에 대충 들고 있던 폰을 고쳐 잡고 귓가로 가져가면서도 추궁은 그치지 않았다.


"권순영은 대체 뭐 하고 있는 건데. 내가 분명히 숙소 앞까지만 데려다 주고 오라고 했잖아, 걔 할일 태산이라고. 우리 공연 언젠지 몰라서 그래? 그따위 안무로 무대 설 거냐고, 진짜."

- ....... -

"우리 지금 노닥거릴 시간 없어. 너넨 얼마나 준비가 잘 되서 여유작작인지 모르겠지만-"

-─그만해, 이지훈. -


불쑥 끼어든 순영의 가라앉은 음성에 지훈은 입을 다물었다.

처음부터 순영이 듣고 있다는 전제 하에 꺼냈던 말들이었다. 나가서 여태 돌아오지도 않는 권순영이 아픈 전원우를 혼자 숙소에 두고 따로 샜을 리가 만무하니까. 그리고 권순영이 아픈 전원우에게 여태 약을 먹이지 않았을 리도 없는데 저리 켕기는 대답이 나온다는 건, 필시 무언가 들키고 싶지 않은 게 있기 때문일 거다. 그 둘만의 ‘무언가’가 무엇인지 차마 상상하고 싶진 않아서. 지훈은 일부러 확인사살을 했다.


"듣고 있었어?"

- 내가 잘못했으니까 원우한테 뭐라고 하지 마. 원우 열이 계속 안 떨어져서.. 혼자 두고 가기 좀 그래서 같이 있었던 거야. -


어련하시겠어.

그 상황에 전원우를 혼자 두고 곧장 연습실로 돌아왔으면 니가 권순영이 아니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순순히 져 줄 마음은 없는 지훈은 굳이 밉살맞게 덧붙였다.


"니가 아픈애 옆에 계속 붙어 있으니까 쉬지도 못하는 거라는 생각은 안 들어?"

- ...그래 알았어. 곧 갈게. -


순영의 시무룩한 수긍을 끝으로 통화를 종료한 지훈은 짜증스럽게 앞머리를 헤집어 넘기며 모자를 고쳐 썼다. 분명 바라던 대답도 받아 냈고, 상황도 확인했고, 짜증도 실컷 냈는데 무언가 석연치 않은 기분에 머리가 답답했다. 괜시리 뜨끈거리는 이마를 까슬한 손등으로 문질거리던 중 카톡이 왔다.


원우

[ 미안해 내가계속 수녕이 붙잡은거야 ]

[ 순영이 지금갔어 ]

[ 너무 화내지마 동생들도 있는데ㅜ ]

[ 내일부터 더열심히 할게 ]


그리고 이모티콘 파이팅.

스크린으로 쉼 없이 뜨는 메시지 프리뷰를 내려다 보던 지훈이 결국 코웃음을 터트렸다. 나만 맨날 악역이지.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를 보호하는 두 사람을 박해하는 악당에 불과한 제 자신이 우스워, 지훈은 이내 잠금을 풀고 답장을 보냈다.


[ 됐으니까 약이나 먹고 ]

[ 한숨자 ]


그리고 한숨.

모자 밑으로 삐져나온 앞머리가 살짝 흩날렸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제가 권순영에게 꿀린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부럽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권순영처럼 되고 싶다고 여긴 적도 없다. 다만 동생들 있는 데서 순영이 무안하게 하지 말라는 원우의 당부 문자를 보니, 권순영이 오면 메로나 한가운데서 보란듯이 엉덩이를 발로 한대 차 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2.


"지후나.."

"저리 꺼져."

"야아..."


아침 출근부터 작업실까지 따라와 소매가 길게 덮인 손가락 끝으로 어깨를 콕콕 찌르며 특유의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내는 원우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지훈은 무심한 얼굴로 컴퓨터를 부팅했다. 권순영은 어디 간거야 저너누 수거 안 해가고. 정작 순영에게 밀린 안무 총독을 일임하며 일찌감치 안무실로 귀양 보낸 장본인인 주제에, 되도 않는 불평을 속으로만 혼자 꿍시렁 대는 지훈이었다.


"어제 조퇴해서 미안해. 오늘은 진짜 밤 샐게."

"......."

"순영이가 책임지고 연습 봐준다고 했어. 애들은 어제 거의 끝났다는데, 나만 뒤쳐지긴 싫어서.."

"...몸은 어떤데."


배는 괜찮아? 아프진 않고? 열은 내린거야? 약은 먹었어?── 솔직하게 입 밖으로 내놓지 못하는 물음을 꾹 삼켜 넘겼다. 다정하고 맹목적인 걱정은 지훈의 몫이 아니었다. 원체 그럴만한 성격도 못 되고, 어울리지도 않는다. 무뚝뚝하기 짝이 없는 말 한마디. 그 정도가 최대한의 표현이었다.


"이제 괜찮아."


연습할 수 있어, 아직 잠긴 목소리로 밝게 대답하는 꼴이 짜증스러워서 홱 돌아보자 원우는 대답 대신 소매를 길게 끌어 덮은 손가락 끝으로 지훈의 어깨를 콕콕 건드렸다. 제 어깨 뒤를 끄적이는 원우의 손을 묵과한 지훈은 밤새 창백해진 마른 뺨을 빤히 올려다 보다가, 조용히 시선을 내렸다.


"..그래. 가서 연습해."

"응... 너도."


어깨를 깨작이던 손이 멀어진다.

달칵, 닫혀진 문을 돌아보지 않은 지훈은 그대로 모니터의 전원을 켜고, 계정 패스워드를 입력했다. 화면이 전환되는 짤막한 순간 까만 화면 위로 비춰지는 제 얼굴이 꼴 보기 싫어 모자를 다시 고쳐 썼다.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지훈은 입술을 깨물었다.


착각이 아니라면, 전원우가 제 어깨에 끼적거리던 건-

하트(♡)다.




3.


겨우 몇 시간 연습을 빠진 정도로 결과물에 지장을 주는 녀석이었다면, 제가 애초부터 권순영을 의식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지훈은 생각했다. 하루 지나 한결 정리된 퍼포먼스는 아무리 깐깐한 지훈이라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는 수준으로 짜여 있었다. 물론 이걸 권순영 혼자 만든 것도 아니고, 찬이나 다른 멤버들의 도움도 들어갔긴 했겠지만 권순영이 맡으면 완성도와 임펙트가 이미 다르다는 걸 지훈은 알고 있었다. 민규나 석민이도 허우적대지 않고 비교적 잘 따라가는 걸 보면 얼마나 죽어라고 했는지 연습량이 눈에 훤히 다 보일 정도라, 공연 끝나면 위쪽에 회식이라도 부탁드려야겠다 싶었다. 아 물론 총대는 승철이형 시킬 거지만.


"원우야 거기 좀만 느리게 가자. 너 혼자 빨라 지금."

"이렇게?"

"아니 이렇게.."


원우가 따라가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춤은 연습량의 차이가 눈으로 확연히 드러나는 분야다. 만 하루는 더 죽어라고 연습한 멤버들도 있는데 실력 차이가 안 나면 그것도 억울한 일이겠지만. 혼자만 박자가 안 맞아 버벅대는 원우에게 몇 번이고 시범 동작을 보이다 결국 원우 뒤쪽으로 가서 팔꿈치를 잡고 동작을 맞춰주는 순영을 보고 기가 막혔던 게 비단 지훈 한명만은 아니었던지, 뒤에서 민규가 득달같이 지적했다.


"와~ 순영이형 장난 아니다. 어제 우리한테는 그것도 못 하냐고 욕하고 때렸으면서!"

"니가 자꾸 틀렸잖아."

"원우형도 틀렸잖아요! 왜 우리한테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돌아선 순영이 무언의 압박을 주자 얼른 입을 다문 민규가 소리없이 입술을 삐죽였다. 하여튼 눈치 더럽게 없는 김민규의 원성에 마지못해 자리로 돌아간 순영이 다시 원우에게 집중하는 음성은 방금과 전혀 딴판으로 다정하고, 친절하다.


"응 원우야 다시 한번 해봐."


..이래서야 눈치를 못 채는 게 바보 등신일 정도로.

거울 속 원우를 바라보는 눈길조차 너무 뻔하고 진부할 만큼 숨김이 없어서, 지훈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권순영의 감정 같은 건 누구라도 다 알 거다.

딱, 한 명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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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점은 2013년 연습생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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