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 배드로맨스 (원른합작)

iamond 2016. 11. 16. 00:42






선생님.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을까요.
머릿 속이 너무 복잡해서... 뭐부터 얘기를 해야 될 지도 모르겠어요.

일단 제 소개를 먼저 할게요.

제 이름은 전연우구요.
나이는.. 20대 후반. 결혼한 지 3년 된 주부예요.
아직 애는 없구요.

오늘 이렇게 찾아뵙게 된 건, 다름이 아니라 제 동생 때문이에요.
제 하나 밖에 없는... 남동생이요.








배드로맨스

주지훈 x 전원우






 

1.

동생 이름은 원우예요.
저랑 똑같이 생겼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 솔직히 전 원우 인물이 더 좋다고 생각해요. 동생이라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잘생겼거든요. 키도 크고, 훤칠하고. 같이 팔짱 끼고 걸으면 남친이냐는 소리도 종종 들었어요. 애가 생긴 건 날카로워 보여도 곰살맞은 데가 있어서 제 가방도 꼭 들어주고 그랬거든요.

저랑 나이 차는 좀 나지만 정말 각별하게 자랐어요.
부모님도 일찍이 이혼하시고, 엄마랑 같이 살았는데 엄마도 일하느라 바쁘시다 보니 제가 거의 엄마 노릇을 했거든요. 우리 원우 밥 차려주려다 보니 집안일도 자연스럽게 제가 하게 됐고.. 엄마 대신해서 제가 더 많이 신경쓰고 챙겨줬어요. 원우도 거의 저를 엄마처럼 여기는 것 같더라구요. 원우 고1 때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그 이후로는 정말 저희 둘 밖에 안 남게 되가지고.



전 대학을 안 갔어요.
엄마 돌아가시기 전에도 형편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고, 당장 돈 버는 게 더 중요했어요. 제 몸이 고생해도 원우는 고생시키기 싫었거든요. 원우 만큼은 고생 같은 거 모르고, 험한 꼴 안 당하고.. 번듯하게 잘 살아줬으면 싶었어요.

원우는 내 하나뿐인 동생이고,
내 유일한 희망이고..
내가 믿을 구석은 원우밖에 없었거든요.





2.

전 결혼을 꽤 일찍 한 편이에요.
속도위반 같은 건 아니었고... 그냥, 할 수 있을 때 빨리 하고 싶었어요. 부모님께서 일찍 이혼을 하셔서 빨리 내 가정을 꾸리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는지도 몰라요. 그래도 원우랑 따로 살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결혼을 하면서 신랑한테 제일 먼저 다짐을 받았던 게 그거거든요. 난 결혼해도 원우랑 같이 살 거라고. 다 큰 남동생을 신혼집에 데려가겠다고 하면 좋아할 남자가 누가 있겠냐 싶겠지만, 우리 신랑은 받아 주더라구요.

원우도 잘 받아들여줬어요.
갑자기 남편감 데려와서 결혼하겠다고 하는데도 별로 놀라진 않더라구요. 다행이었죠. 사실 전 원우가 반대했으면 결혼 안 했을 거예요. 누나네 신혼집에 같이 산다는 게 내심 기분은 별로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딱히 그런 걸 티 내진 않았어요. 저를 배려한 거겠죠. 원우는 속이 깊은 애거든요.



결혼식장에서도 원우 손 잡고 들어갔어요.
아버지랑은 연락도 끊고 산 지 오래였거든요. 원우가 제 손을 잡고 신랑한테 넘겨주는데, 순간 눈물 쏟아질 뻔한 거 꾹 참았어요. 눈물 보이기 싫어서.. 원우는 좀 복잡한 얼굴이더라고요. 하나뿐인 누나 결혼식이라 그랬겠죠. 정장 차려입은 우리 원우 참 멋있더라구요. 나중에 누구한테 주기 싫을 정도로... 후훗.


신혼 여행은 안 갔어요.
제가 가지 말자고 했거든요. 그럴 형편도 아니었고, 원우는 아직 비행기도 못 타봤는데 저만 가기 좀 그래서요. 신랑은 그런 것도 다 이해해줬어요. 우리 남편이지만 진짜 맘이 참 넓어요. 신혼집 청소하는데, 왠만한 짐도 남편이랑 원우가 다 나르고 정리했어요. 집에 남자가 둘 있으니까 너무 든든하고 좋더라구요.



그래서 우리 집 남자들 고생한 만큼 잘 먹이려고 잠깐 장 보러 갔다 왔는데, 둘이 벌써 가구 다 들여놓고 싹 치워 놨더라구요. 그때 신랑은 샤워하고 있었구, 뽀송하게 새 옷 갈아입은 원우가 거실에서 저 기다리고 있다가 장바구니 들어 주는데 너무 기분 좋았어요. 장 봐온 거 알아서 냉장고에 착착착착 정리도 해주고. 내 동생이지만 진짜 자상해요.

너무 좋아가지고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면서 파 썰고 있는데, 원우가 갑자기 뒤에서 꼭 안아주더라구요. 누나 꼭 행복하라고... 그러는 거 있죠. 그러더니 ‘누나 미안해..’ 하는 거예요.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전 그냥 웃었죠. 방금 씻고 나와가지고 원우 머리에서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데 샤워 코롱 냄새가.... 왠지 남자 느낌? 우리 원우가 다 컸구나, 누나 걱정 해 주는구나 싶어서 기특하더라구요.



원우 젖은 머리 털어주면서 쓰담쓰담 해주고 있는데, 그때 마침 우리 신랑이 씻고 나오더라고요. 수건으로 머리 털면서 ‘남매끼리 우애 좋네’ 하는데 기분 되게 좋은 거 있죠. 자기 질투하냐고 물어보니까 쫌 한다면서 피식 웃더라구요. 신랑이 젖은 머리를 터는데 원우랑 똑같은 냄새가 나는 거예요. 솔직히 좀 묘했어요. 근데 그냥 넘겼죠. 한 집에서 같은 제품을 쓰니까 당연한 거잖아요.

그날 밤 신랑이랑 한 침대에서 자는데, 어두운 데서 맡으니까 더 선명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우리 원우랑 내 남편한테서.. 같은 냄새가 난다는 거요.






3.


우리 신랑이요, 되게 자상해요.
이해심도 깊고 저를 많이 배려해줘요. 신랑이 저보다 연상인데, 솔직히 저나 원우나 아버지 없이 자라서 그런지 가끔씩 아빠 같고 오빠 같이 챙겨주는 모습에 마음이 많이 끌렸어요. 속이 정말 깊은 사람이에요. 그리고 전 잘 몰랐는데, 제 친구들 얘기 들으니까 저랑 좀 닮았다고 하더라구요? 쌍꺼풀 없고 눈이 좀 찢어진 거 빼면 전 잘 모르겠던데. 오히려 원우랑 닮은 거 같아요. 키도 크고 훤칠한 느낌에, 저한테 자상하다는 점이.



그래서인지 저희 신랑이랑 원우랑 되게 친해요.

둘이 맨날 붙어 다니더라고요. 그 왜, 남자들끼리 통하는 게 있잖아요. 게임이나 중계 방송 뭐 그런 거. 쉬는 날에 둘이 맨날 그거 보고 있어요. 쇼파에 찰싹 붙어가지고 뭘 그렇게 집중하나 하고 보면 게임 방송이더라고요. 밥 먹을 때도 게임 얘기 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전 하나도 못 알아들으니까 대화에 낄 수가 없더라고요. 그렇다고 모처럼 둘이 친하게 지내는데 뭐라고 하기도 좀 그렇구.


제가 원우한테 쓴 소리를 잘 못하거든요.

원우도 매형이 형 같으니까 더 친하게 스스럼 없이 대하는 거잖아요. 지훈이형, 지훈이형 하고 편하게 부르면서 신난 모습 보니까 솔직히 좀 놀랍기도 하긴 했어요. 전 원우가 집에 있는 모습만 봤지 밖에서 친구들이랑 뭐 하고 노는지는 몰랐으니까 아 얘가 형들이랑 이렇게 어울리는 구나 싶어서 신선하더라고요.



질투요? 솔직히 좀 나죠.

아무리 그래도 내 남편인데 나보다 원우랑 더 가깝고 더 친해 보이니까. 집에서도 나보다 원우랑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요. 둘이 내가 전혀 모르는 주제로만 얘기하고 있으니까 어떻게 끼어들 수도 없고. 원우가 수험생이었으면 공부 핑계라도 댔을텐데, 수시로 합격해버려서 대학도 다 정해진 판이라 너무 게임만 한다고 뭐라 할 수도 없더라구요. 워낙 자기 할 일은 또 똑부러지게 하는 애라. 그리고 가끔씩 저를 챙겨주기도 하거든요. 너무 제가 소외되어 있으니까 적당히 끊기도 하고. 동생이라 그런지 저를 너무 잘 알아요.



원우한테는 불평을 못 하니까 남편한테 대신 하죠.

잔소리는 차마 못 하고 그냥 투정 식으로만. 자기 원우랑 너무 친한 거 아니냐. 좀 질투 난다. 그러면 또 귀엽다면서 머리 쓰다듬어 주고 유야무야 넘어가요. 워낙 잘 받아주는 사람이라 그런 유치한 말도 다 받아줘버리니까 미워할 수도 없고. 원우가 그이를 좋아하는 것도 너무 이해가 가요. 원우한테도 이런 연상의 남자가 없었잖아요. 여자들만 있는 집에서 자랐고 하다 보니까 형한테 어리광도 부리고 싶겠죠 당연히.



근데 좀.... 그래요.

그 좁아터진 쇼파에 180 넘는 커다란 남자 둘이 바짝 붙어서 엉겨 있고, 제가 없는 날엔 하루 종일 그러다 엎어져서 자고. 집에 딱 들어왔는데 불 다 꺼져 있고 둘이 쇼파에 엉겨서 끌어안고 잠든 거 봤을 땐 솔직히 기분 진짜 묘했어요. 차마 불도 못 켜고 그냥 멍하니 쳐다봤는데, 남편이 먼저 눈을 뜨더라구요. 저 보고 놀라지도 않고, 왔냐고 하면서 원우 등을 다독이는 거예요. 너무 다정하게. 근데 원우가 잠결에 신랑 품 속으로 꼬물거리면서 파고들더라구요. 그러더니 신랑이 피식 웃으면서 원우 자니까 방까지 데려다 주겠다면서 안아들고 가는 거 있죠.



저 솔직히 기분 진짜 이상했어요.

그게 너무 자연스러워 보여서 더 그렇더라고요. 하루 이틀 일이 아닌 것 같았어요. 원우 키가 작은 편도 아니고, 180 짜리를 그렇게 번쩍 안아든다는 게.. 어린 애도 아니고 이제 스무 살 되는 남자앤데. 이건 좀.. 그냥 친한 수준을 넘어선 거 아닌가요? 남자들끼리 쉽게 할 법한 일들은 아니잖아요. 내가 있을 때도 저러는데, 없을 땐 또 얼마나 더 할까 싶기도 하고 정말 별의 별 생각들이 다 드는 거예요.



그때까지만 해도 전 그냥 제가 과민반응이라고 생각했어요.

워낙 제가 원우를 과보호하면서 키웠던 것도 있고, 아직 신혼이라 내가 예민한가보다 생각하고 그냥 넘겼어요. 그런데 점점 갈수록 좀 쎄한 느낌이 들더라구요. 그때부터 원우랑 신랑 하는 걸 가만히 지켜봤는데, 좀.... 보통 남자들끼리 집에서 손깍지 끼고 있고 그러나요? 그것도 내가 없는 때만 골라서? 제 기척이 들리면 슬쩍 떨어지고 그러는데, 그게 더 수상한 거예요. 그나마 내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게 명백히 티가 나 버리니까. 보면 볼수록 내가 봐도 이건 아니다 싶은 순간들이 있는 거예요.



그리고 둘이 정말 시간을 많이 보내더라고요.

밤에 늦게까지 거실에서 게임하다가 새벽 지새는 게 보통이고 휴일에는 영화 보러 간다, 무슨 공연을 보러 간다 하면서 안 들어와요. 당연히 밥도 밖에서 다 먹고요. 제가 일 때문에 바쁜 건 아는데, 제가 없는 시간에만 골라서 그러니까 너무 이상한 거예요. 가끔씩 일찍 끝나서 집에 들어올 때마다 아무도 없고 컴컴한데 기분이 참 그렇더라고요. 원우한테 전화해보면 지훈이형이랑 같이 있다고는 하는데, 어디 어디 갔다고 보고하는 것 치고 주변이 너무 정적해서 더 신경 쓰이고. 너무 캐물으면 집요해 보일까봐 그냥 알았다고 끊고 나서 계속 의심하는 제 자신이 너무 싫은 거예요. 내가 왜 이러지 싶으면서도 자꾸 그러는게 너무 구차하니까.


그런 생각도 해봤어요.

혹시 우리 남편이 바람을 피우나. 원우가 그걸 숨겨 주느라 같이 있는 척 해 주는 건가. 그런 거면 원우도 저를 속이고 있다는 게 되잖아요. 근데 차라리 그게 속 편하겠다 싶은 기분까지 들더라구요. 하나 밖에 없는 남동생을 가지고 이런 의심을 해야 되는 상황이 너무 싫고.. 그냥 남동생도 아니고 우리 원우인데. 내가 어떻게 키운 원우인데... 저 원우 진짜 사랑한단 말이예요. 우리 원우가 어떻게 그래요. 원우가 어떻게, 내 남편을.


그렇게 아무한테도 말 못하고 혼자 끙끙 앓고 있는데, 몸이 좀 이상하더라구요.

확인해보니까 저, 임신 3주차였어요.






4.


처음엔 솔직히 걱정됐어요.

근데 남편이랑 원우가 되게 좋아해 주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보니까 왠지 모를 죄책감도 좀 들었어요. 내가 정말 괜한 오해를 했던 건 아닌가. 원우랑 신랑한테 진짜 몹쓸 생각을 했구나 싶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더 잘해주려고 노력 많이 했어요.


그랬더니 오히려 걱정을 해 주더라구요. 이제 홀몸도 아닌데 무리하지 말라고. 임신해서 그런지 둘이 전처럼 자주 붙어 있진 않았어요. 저를 많이 배려해줬거든요. 신랑도 집에 꼬박꼬박 들어와서 저 챙겨주고, 왠만한 집안일은 원우가 다 해줬어요. 그땐 정말 행복하더라구요.



그래. 내가 괜한 생각을 한 거야.

매형이랑 처남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어. 그것도 내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집에서.

정말 말도 안돼.



그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그날 저녁, 보게 된 거예요.


제가 거실 쇼파에서 깜빡 잠들었던 사이 저희 남편이 설거지 하고 있는 원우를 뒤에서 끌어안고 있는 걸요. 원우는 처음엔 안된다고, 거실에 누나 있다고.. 거절 하더라구요. 그런데 남편이 원우 턱을 돌려서 입을 맞추니까 원우가 고무장갑 낀 손으로 밀쳐내면서 안된다고 하다가, 남편이 뒷목 잡아 누르면서 밀어 붙이니까 그대로 또 받아 주더라구요. 제 남편 목덜미에 팔 두르고 끌어 안는 원우 보니까 솔직히 정말 심장이 철렁 했어요. 너무 충격적이더라고요. 그렇게 계속 콸콸 쏟아지던 물 소리가 멎었을 때 도망치듯 화장실로 향하는 남편 발 소리를 들을 땐 거의 확인사살을 당하는 기분이었어요.


한참 동안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는 남편이랑, 설거지 끝나자마자 방문 닫고 들어가 버리는 원우.

전 정말..... 세상에서 제일 비참한 기분이었어요.






5.


결국 아기는 낳을 수 없었어요.

제가 계단에서 굴렀거든요. 병원 가 보니까 유산 됐다고 하더라구요. 전 그 말을 듣고도 제가 어떤 기분이어야 되는 지를 몰라서 너무 암담했어요. 계속 이 애를 낳아도 되는 걸까, 내가 이 애를 낳을 수 있을까 고민했었거든요. 어쩌면 이 애 때문에 내가 그런 걸 봤다고 생각했을 지도 몰라요. 애만 생기지 않았더라면. 내가 계속 집에 있지 않았더라면. 그냥 예전처럼 일 하면서 바쁘게 살았더라면. 계속 모르고 지냈을 수도 있을텐데. 이런 생각을 아예 안 하고 살 수도 있었을 텐데.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어버린 아이를 원망하고 싶을 만큼 한계였어요.

뭐라도 미워하고 싶었어요. 내가 원우를 미워할 수는 없었으니까. 남편을 미워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정말 나한테 잔인하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남편을 어떻게 미워해요. 나를 사랑해 준 유일한 남자인데. 내가 원우를 어떻게 미워해요. 걘 내 전부인데.


이혼을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아무리 미워도 지금 나한테 남겨진 게 그 둘 뿐이었으니까. 아이도 잃었는데 남편도 잃고 동생까지 잃으면 난 어떻게 살아요. 내가 그 두 사람의 연결 고리가 되더라도 좋으니까.... 그냥 계속 내 곁에 남아 줬으면 싶었어요. 그렇게라도 붙잡아 보고 싶을 만큼 전 필사적이었어요. 아이를 유산한 저를 위로하느라 제 비위를 맞추고 제 눈치를 보는 남편과 원우를 보면서 전 솔직히 좀 좋았어요.



그래, 미안하지?

너네 때문에 망가진 날 보니까 미안해서 죽을 것 같지?

앞으로도 평생 나한테 미안해 하면서 살아.


그렇게 나한테 죄악감 갖고 살면서....

나한테 미안해 하면서,

둘이 계속───










.

.

.



찰칵, 필름이 다 돌아가 재생이 끊긴 테이프를 망연히 내려다 보았다.

원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얼마 전 화장실 욕조에서 손목을 긋고 자살한 누나가 남긴 유품의 메시지가 끝났다. 그토록 길었던 누나의 말이 원우의 말을 앗아간 것 같았다. 원우는 다달다달 떨리는 손으로 전원을 껐다. 그리고 하얗게 질린 손마디로 테이프를 움켜 쥐다, 눈을 질끈 감고 비명을 질렀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언제 어느 때나 저를 사랑한다 말해 주었던 누나의 따듯한 웃음이 살해당한 듯한 기분이었다.

누나는 대체 어떤 눈으로 저와 매형을 바라봐 왔던 걸까. 그토록 다정하게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속으로는 항상 이런 생각들을 해 왔던 걸까. 누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혼자서 기만당해 왔던 걸까. 얼마나 저를, 아니 우리를 원망했을까.



"누나..... 내가..."


내가, 먼저였어.

지훈이형을 만났던 것도, 지훈이형을 가졌던 것도.

내가 먼저였어, 누나.


누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저와 매형의 관계를, 매형이 되기 이전부터 이어졌던 그 감정을, 그가 어떤 마음으로 제 매형이 되기로 했는지를. 불쌍한 누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끝까지, 끝의 끝 까지도.




그렇게 나한테 죄악감 갖고 살면서....

나한테 미안해 하면서,

둘이 계속───


그렇게,

살아.



누나의 마지막 말을 되새기며 원우는 테이프 필름을 잡아 뜯었다.

휘리릭, 휘리릭. 팽그르르 늘어지는 필름을 구겨 뜯으며 원우는 대답했다.


응, 누나.

내가 살아줄게.
누나 대신, 내가.


누나가 없는 그의 옆 자리는 앞으로도 계속 제가 있어 주겠다고.

대답하면서, 원우는 누나 대신 울었다.